『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 20주년 특집호. (+리뷰 & 비하인드 / この青空に約束を / Kono aozora ni yakusoku o, 20th anniversary.)

2026. 3. 31. 00:00펌프킨 푸딩

2026년 3월 31일,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 발매 20주년!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이 2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제가 처음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을 플레이한 것이 2008년 즈음이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이 작품을 플레이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매년 한 번씩은 다시 플레이하는 제 마음속 '작은 명작'으로 남아서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덧 이렇게 '펌프킨 푸딩'이라는 이름으로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의 발매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분명 여러분들께도 추억 깊은 곳에 자리한 작품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매년 한 번씩 플레이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날 문득 떠올리게 되는 그런 작품으로요.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나, 오래된 목조 건물 같이 단순히 스쳐 지나간 풍경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예전의 추억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의 설렜던 감정과, 오래 지나지 않아 닥쳐오는 위기들, 까칠한 전학생과의 다툼과 화해, 츠구미 기숙사에서 보낸 일상, 만남의 돌의 전설, 엔딩을 보고 난 뒤 한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던 여운,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해 온 기숙사 동료들에게 이별을 고하며 흘린 눈물까지, 여러분들의 기억 속엔 그 추억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저를 포함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좋은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역시도 이번 20주년 특집으로 오랜만에 미나미사코우 섬과 츠구미 기숙사로 돌아가서 그때의 청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주년 기념 비하인드 >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정실부인 우미.

우미는 제가 곤약에서 처음 공략한 히로인이었습니다.

 

'주인공을 잘 챙겨주는 소심한 성격의 소꿉친구'라는 설정은 지금 보면 흔해빠진 교과서적 캐릭터의 전형이지만, 사실 우미는 정말로 강인한 아이죠. 어머니의 야반도주 때문에 섬사람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당했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떠나가버려서 한순간에 외톨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섬 주민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호시노 우미'가 되는 결말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아오조라를 가장 먼저 플레이하고, 쇼콜라를 마지막에 플레이한 탓에) 지금은 중증의 미도리 빠(?)가 되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정실 포지션은 우미밖에 없구나라는걸 새삼 느낍니다. 이렇게 가련하면서도 아주 강인하고, 사실 오랫동안 주인공을 좋아했지만 사랑을 포기했다는 서사까지 완벽할 수가 있을까요.

 

물론 마루토 후미아키의 시나리오 라이팅 특성상 전작의 히로인들의 속성을 비틀어서 다음 작품에 녹여내는 것을 감안하면 우미에게 미도리의 DNA가 약간 섞여있을지도 모르지만, 미도리와 우미는 각각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죠.

 

로쿠죠의 아가씨 미야호.

다른 게임 같았으면 메인 히로인 포지션을 꿰차고도 남았을 텐데...

 

부잣집 딸과 시골 소년이라는 조합은 자칫하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단순한 개인 간의 사랑 이야기로만 그리지 않고 로쿠죠 키이치로(미야호의 할아버지이자 옛 이름 윌리엄 에르거, 데미즈가와 중공업이 미나미사코우 섬으로 진출하는 데 기여했던 인물)와 로쿠죠 미야코(미야호의 할머니이자 로쿠죠 키이치로를 데릴남편으로 맞아들인 인물)의 50년 전 사랑 이야기를 끌어오며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 스럽게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데미즈가와 중공업이 작중 시점 직전까지 미나미사코우 섬에서 벌여 왔던 사업이나 로쿠죠 키이치로 이사장의 일생 같은 세세한 배경 설정도 흥미로웠고, 이런 디테일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작품 세계가 한층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에르거 선생'의 일기장이 발견된 이후 밝혀지는 로쿠죠 가문의 50년 전 연애사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작중 시점의 주인공과 미야호에게 겹쳐 보이도록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도 매우 좋았습니다.

 

여기에 '빌런'의 등장까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긴장감을 더해 주었는데, 평소 인자해 보이던 타키무라 씨가 주인공에게 '아가씨에게 달라붙은 무엄한 놈'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 역시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작품이었다면 미야호는 메인 히로인 자리를 꿰차는 걸 넘어 미연시계의 전설적인 캐릭터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히로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에는 워낙 쟁쟁한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결국 서브 히로인 포지션에 머무르게 된 점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독한 외톨이 '였던' 시즈.

츠구미 기숙사의 마스코트.

 

아무리 변태이자 짐승이자 동정이라 하더라도 시즈에게 '연애 감정'이 생기긴 힘들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쩌면 '미연시' 등장인물로서는 실패한 캐릭터 디자인일지도 모르지만, 그 캐릭터 디자인마저도 마지막 반전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면 또 완전히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토리 역시 서브 히로인으로서의 포지션에는 충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지무라 시즈라는 캐릭터 하나만을 조명하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과 반응에 조금 더 집중해 보면 곳곳에 깔려 있는 복선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평소 순둥순둥 했던 사에리가 와타루를 엄하게 질책하는 장면이나, 벌레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우미가 주인공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 등에서, 마냥 밝아 보였던 게임에 엄숙한 깊이를 더해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엔딩 이후, 시즈가 엄청난 미인으로 성장한 나머지 섬에 돌아왔을 때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무도 시즈를 알아보지 못하는 연출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나오코 = 멋있음.

마루네코 시리즈에서 가장 멋진 캐릭터.

 

나오코는 긴 흑발의 쿨해 보이는 외모가 돋보이지만, 남들 앞에서는 모범생을 연기하면서도 동료들 앞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왕언니로 군림하는 다층적인 캐릭터라는 점이 나오코의 진정한 매력이죠. 학생 수가 많지 않은 타카미즈카 학원이지만 그녀는 학생회를 지배하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설득하고 구워삶는 언변으로 모두를 이끌고, 학생들의 선망을 받는 동시에 교직원들의 신뢰까지 얻는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멋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습니다.

 

여기에 리더십도 뛰어나고 동료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기도 하며, 때로는 오만해 보일 정도의 자신감까지 드러내는 점 역시 그녀의 캐릭터성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게임 속 거의 모든 루트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때로는 주인공을 몇 번이고 위기에서 구해 주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정작 본인 루트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었는데, 주인공의 첫 경험 상대였다는 설정까진 반드시 필요했을까 싶습니다. '쇼콜라'의 아키시마 카나코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스토리를 파고들수록 와타루 역시 (집안 사정 때문이라고는 해도) 여러모로 엇나간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해져 조금 미묘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순수 재미로는 역시 사에리 루트.

마루네코 시리즈 중에서 '담임 선생님'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포지션.

 

마루토 후미아키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러 히로인들 중 '연상' 캐릭터들의 시나리오는 하나같이 재미있었습니다. (나오코는 미묘했지만 다른 루트에서 멋있게 등장하니까...)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화이트 앨범2의 '카자오카 마리'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준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 마리는 겉보기엔 나오코 그 자체지만 그 이면에는 순둥순둥한 사에리 같은 면모가 있죠. 술꾼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사에리 루트 막바지 기숙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각성하는 사에리와 그런 그녀를 위해 첫 반대표를 던져주는 모리모토 선생님에 힘입어, 교직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나가면서 교장과 교감의 마수를 물리치고 결국엔 기숙사를 지켜내는 결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쇼콜라의 스쳐 지나가는 설정이었던 '히가시츠모토 여대'라는 출신 배경을 가져와서 아키시마 카나코와의 접점을 가지고 있는 점도 꽤 흥미롭죠. 자세한 내막은 마루네코 시리즈의 팬디스크인 포세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인상은 별로였던 린나.

좋든 싫든 작품을 관통하는 '타이틀' 히로인.

 

보통 미연시의 캐릭터들은 주인공에게 친절한데, 린나는 '이렇게까지 까칠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까칠함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어 첫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후 마라톤 대회라는 위기를 향해 서사가 자연스럽게 전개되며, 결과와 상관없이 갈등이 눈 녹듯 해소되는 반전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액트1이 끝난 이후 급격히 존재감이 옅어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당시에는 '마루토식 훼이크 타이틀 히로인'이라는 공식을 잘 몰랐던 탓에 자연스럽게 우미를 타이틀 히로인으로 생각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실제로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가 우미이기도 했고, 우미 루트의 완성도 역시 워낙 높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만남의 돌' 전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자 『안녕이라는 말 대신에』 의 작사가로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히로인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랜드 엔딩.

약속의 날.

 

학교 측의 마수에 맞서 기숙사의 조기 철거를 막아내고 엔딩에 도달했지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승리의 영광도, 악에 대한 응징도 아닌 오직 '작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별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기숙사 동료들이 '안녕이라는 말 대신에'를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제게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결론적으로 '약속의 날'은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대단원으로서,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가 보여 줄 수 있는 연출의 정점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각 히로인의 개별 루트를 모두 본 뒤 진히로인 루트로 마무리하며 다른 히로인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히로인 루트 모두가 공유하는 큰 흐름 속에서 대단원을 완성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마지막으로 안녕을 전할 수 있게 만드는, 그야말로 최고의 마무리였습니다.

 

히든루트 아카네.

와타루의 또 다른 반쪽.

 

마냥 밝고 말 많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아카네에게 이렇게 깊은 서사가 부여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아카네 루트'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공략을 찾는 과정에서 스포일러를 어느 정도 접한 상태로 플레이를 시작하게 되어 무너진 기숙사를 목격하는 장면에서의 충격이 다소 반감된 점은 아쉬웠습니다. 아카네 루트 자체가 꽤나 숨겨져 있는 구조이다 보니, 저처럼 막히면 바로 검색을 해버리는 스타일의 플레이어들에겐 오히려 좋지 않게 작용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드 엔딩' 이후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연출이나, 린나 루트에서 다소 애매하게 남겨졌던 '만남의 돌'의 전설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점은 매우 좋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아카네의 성우가 쇼콜라의 (치롤 성우가 아니라) 스즈 성우라는 사실은 지금도 믿기질 않네요...

 

츠구미 기숙사.

다녀왔습니다.

 

마치며.

저는 이 게임을 켤 때마다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아침에 실행하면 밝은 햇살이 기숙사에 스며들고, 점심 무렵에는 모두가 등교해 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기숙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녁이 되면 노을에 물든 풍경이, 밤에는 산중에 홀로 불 켜진 기숙사와 와타루의 기타 소리가 저를 맞이합니다. 때로는 밤중에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다음 날이면 비에 젖은 운동장을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매년 1월 1일마다 제야의 타종 소리를 듣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되겠죠.

 

그만큼 츠구미 기숙사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수많은 추억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는 게임을 실행할 때마다 느껴질 리 없는 상쾌한 산공기를 들이쉬며, 속으로 '다녀왔습니다.'라고 중얼거립니다. 비록 그곳의 공기를 실제로 느낄 수는 없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도 게임을 켜고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잡설이 길었지만 이로써 20주년 특집호를 마칩니다. 다시 한번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의 20주년을 축하하며, 20주년을 함께 빛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 오프닝 한글패치. (+다운로드 링크)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 20주년 기념 오프닝 풀 한글화!다운로드 링크는 여기. 읽어주세요.- 2006년 발매된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의 오프닝 한글화입니다.- 2024년에 발매된 『이 푸른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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